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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당화 성황당" 전설

[과거 해당화 성황당]

[현재 해당화 성황당]

 

조선시대 소돌 마을에는 해(海)씨 성을 가진 아리따운 아가씨와 외지에서 고기 잡으러 온 봉(鳳)씨 성을 가진 청년이 있었다.

아리따운 해(海)양과 봉(鳳)군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이 사실은 금세 마을에 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는 나이가 차면 부모가 짝을 맺어주던 시대이므로 두사람의 사랑을 부모도 마을사람들도 반대했다.

해(海)양과 봉(鳳)군은 부모의 동의없이 이루어진 사랑을 맺기 위해 거친 파도가 치는 날에

소돌바닷가 바위 꼭대기에서 부둥켜 안은 채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그 후 어찌된 일인지 소돌 마을에는 재앙만 생기고 고기는 잡히지 않으며 농사도 흉년이 거듭되었다.

소돌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두 사람의 영혼을 달래주는 제사를 지내 주기로 했다.

제사를 지내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해(海)양과 봉(鳳)군이 뛰어내린 바위에는 작은 가시나무에 빨간꽃이 피었고

꽃이 진 다음 빨간 열매가 맺혔으며 그 바위 꼭대기에서는 봉황이 나타났고 날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소돌 사람들은 마을에 재앙도 없어지고 고기도 잘 잡히는 것으로 보아

두사람의 사랑이 잘 맺어진 좋은 징조하여 그 바위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바위에 있는 꽃나무를 해(海)양의 성씨를 따라서 해당화라고 불렀고

얼마 후 바위 위에 성황당 만들었고 그 이름은 해당화(海棠花) 성황당으로 불렀다.

지금도 소돌 마을의 번영을 위하여 해당화 성황당에서 해당화(海棠花)를 신목(神木)으로 모신다.

 

소돌 마을 해당화 성황당은 당집은 없고, 제단과 해당화 성황목만 있으며

매년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과 시월 초하루(음력 10월 1일)에 두 번 제사를 지낸다.

 

해당화 성황당은 당집이 없고 재단만 있는 행태가 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 사연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높은 사연은 하나를 말해보겠습니다.

 

옛날에 마을 주민들이 해양과 봉군이 뛰어내린 바위 꼭대기 위에 성황당을 만들었는데

거센 바닷바람에 일년도 못가서 당집이 매번 무너져서 할 수 없이 다른 장소로 옮겨 당집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처음으로 제사 지내는 도중에 소돌 바닷가에서 큰 사고가 발생 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잘못된 곳에서 제사를 지내서 용왕님이 노하셨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래의 성황당이 있던 바위꼭대기 옮겨서 제사를 다시 올리고 난 뒤 소돌 바닷가에 큰 사고가 없었고 고기도 잘 잡혔다.

그 사건 이후로는 성황당 위치를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백년 동안 당집이 없는 재단만 있는 동해안 유일의 노천(야외)식 성황당 구조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