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돌 마을의 역사

포근하고 작은 항구 마을

소돌을 한자로 쓰면 "우암(牛岩)" 소처럼 생긴 바위라는 뜻이며 주문진읍 북쪽의 위치한 포근한 작은 항구 마을이다.

소돌 마을의 연혁

1. 고구려(BC 37년 ~ 668년) 지산현(支山縣) 또는 양곡(陽谷)이라고도 불러졌다
2. 신라 35대 경덕왕 16년(757년) 지산현(支山縣)이라 하였으며 명주(溟州)의 속영으로 하였다.
3. 고려 8대 현종 9년(1018년) 지방관제의 개정에 의해 연곡현(連谷縣)에 소속된 마을이었다.
4. 조선 영조 10년(1734년) 호구총수에 의하면 연곡면(連谷面)에 속해 있었다.
5. 조선 영조 33년(1757년) 신리면(新里面)으로 개칭 되었다.
6.
대한제국(1897 ~ 1910년) 신리면(新里面)이 계속 유지 되었다.
7.
일제강점기(1937년) 이곳에 나루터가 있다하여 주문진면(注文津面)으로 개칭 되었다.
8.
일제강점기(1940년) 조선총독부령에 따라,주문진면(注文津面)이 주문진읍(注文津邑)으로 승격
9.
대한민국(1955년) 명주군 주문진읍(注文津邑) 개칭
10.
대한민국(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의 통합으로 강릉시 주문진읍(注文津邑)으로 명칭 변경

소돌 마을은 행정구역상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주문 6리, 주문 12리)소속되어 있으며, "소돌(牛岩)"
이라는 지명은 행정구역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마을 선조들이 불러온 것으로 추정된다.(300여년 추정)

 

소돌 마을의 특징

강릉시 주문진읍에 소재한 소돌마을은 380여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면 거물이(거문동)에서 내려오는 우암천이 마을을 가운데로 흘러서 바다로 나가는데 우암천을 중심으로 남쪽이 주문 6리 이고 북쪽이 주문 12리가 되는 지역에 작은 항구 마을이다.

소돌이라는 명칭은 마을에 전체적인 형국이 소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는 바닷가 주변에 오래된 기암 괴석들도 많이 있으며 해당화를 신목으로 모시는 성황당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돌 마을에 토박이들보다는 외지에서 올라온 이주민들이 더 많아져서 전체의 2/3 정도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이주민들 중 대다수는 경상도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가난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북으로 이주하던 중 이곳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다.

현재 마을 인구는 622가구에 1,324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어업에 종사하는 어가구는 79세대는
모두 소돌 어촌계 어촌계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소돌 어촌계에는 2톤 이상의 어선이 21척,
2톤이하의 어선이 40척 있으며, 양식장과 공동어장을 관리하고 있으며 소돌마을 어촌계원들이 운영하는 좌판식당 12개소 그리고 새벽 조업으로 잡아온 싱싱한 활어를 판매 하는 "자연산 활어 판매장"을 운영 하고 있다.

 

소돌 풍어제(소돌 별신굿)

소돌 풍어제는 "2박 3일" 동안의 신(神)굿으로 이어지는데 이를'소돌 별신(別神)굿'이라 한다.

별신굿은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당이 되기도 하지만, 주문 6리와 주문 12리가 주민들이
한데 어울리는 화합의 축제라는 의미도 크다.
이 굿은 별신굿을 직업으로 하는 세습무당에 의하여 진행되며, 3일에 걸쳐 19거리굿이 진행되는데
19거리굿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부정굿, 청좌굿, 당마지굿, 화해굿, 조상굿, 세존굿, 성주굿, 천왕굿, 삼신굿, 심청굿, 거진굿, 손님굿,
제면굿, 용왕굿, 꽃놀이굿, 뱃놀이굿, 등놀이굿, 거리굿, 놀이굿

마지막 놀이굿은 참관자인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굿이
잘 끝나 마을에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을 기원하며 흥겹게 마친다.
놀이굿에서 무녀들은 각 도의 민요를 부르고 때에 따라서는 유행가까지 불러 주민들의 흥을 돋운다.

19거리굿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용신굿이다.
용신굿이 시작되면 엮어내는 사설(辭說)을 들으려고 굿당이 조용해진다.
예전에는 바다에 띄운 배 위에서 굿을 했으나 날씨를 고려해 요즘에는 종이로 배를 만들어 굿당에
옮겨 놓고 2시간 정도 축원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소돌 풍어제 2년에 한번씩 제를 올렸으나 70년대 들어서면서 5년에 한번 정도 소규모적으로 지내다가 그마저도 최근에 와서는 유동적이다.
그러나 몇 년에 한 번 치러지든 풍어제를 모시는 날짜는 음력 3월 15일로 고정돼 있다.

소돌 풍어제 제삿날에 쓰는 제물은 다른지역과 달리 마을 이름이 소를 상징하는 소돌이므로 육류의
경우 네발 달린 소와 돼지는 쓰지 않고 수탉을 사용한다.

 

해당화 성황당

소돌 마을에는 해당화 성황당이 있는데 동해안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방식에 당집이 없고
재단만 있는 톡특한 형식의 노천(야외)식 성황당이며, 해당화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모신다.

매년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과 시월 초하루(음력 10월 1일)가 되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제사가 치러진다.
 

[소돌 마을 전경]

[소돌항]

[소돌항 자연산 활어 판매장]

[소돌항 좌판식당]

[해당화 성황당]